이 작품은 허구입니다. 실제와 연관이 없습니다.

소설이나 웹툰 등을 보다보면 창작물이 허구임을 알리기 위해 '이 작품은 허구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연관이 없습니다.' 라고 명시해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 문장을 명시한다고 그것이 작품과 실제간의 선긋기가 되지는 못한다.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실제하는, 실제했던 이야기냐고 물을까봐 작가가 이와 같은 의미에서 사족을 달았다면 정확하게는 '이 작품은 허구입니다.'의 표현에서 끝나면 된다. 혹은 '인물 및 단체는 실제가 아닙니다.'까지 표현하면 된다. 도대체 '실제와 연관이 없다.'는 무슨 소리인가.

나는 이와 같은 표현이 공적인 작문 특유의 성질 -공중에게 예의바르게 말하려다보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음-이거나, 작품이 갖는 공적위치에 대한 작가의 방어적 태도의 발현-나는 소송걸리기 시름시름-이라고 생각한다.어떤 허구도 실제와 온전히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연관이 없습니다'이지 못한다. 작품의 요소와 사회 요소를 하나 하나 대응시키며 창작한 것이 아닐지라도 작품은 실제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실제를 기반으로 창작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다.

그래서 작품과 현실사이에 선을 그으며 개인의 창작물일 따름이라 하는 것은 결국 방어적 태도이다. 작가가 방어를 선수치는 것은 특정 작품이 특정 실제의 반영이냐가 문제시 될 때, 이를테면 특정 종교를 비판하거나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논란이 될 상황이라면 작품이 다루는 시대상황이 사회문제로 떠오를 때일 것인데, 작가가 자신의 작품은 실제와 연관이 없다는 태도를 포석으로 깔아두었다면 그것은 책임지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작가는 창작자라는 존재로써의 사회적 위치에 무책임한 것이 된다. 작가는 발언권을 가지고 연단 위에 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연단 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작가가 창작해 낸 이야기는 사회에 대한 비유이며 그 자체로 사회상에 대한 증언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허구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연관이 없습니다.' 이 문장에 담긴 태도를 경계한다.

그런데 사실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내놓으면서 이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증언일 수 있다.. 창작의 자유가 위협받고 그보다 더 강력하게는 토대 자체가 털려버리는 것이 가능한 사회. 사회에 대한 은유가 사회에 대한 증언이 되어버리는데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자신을 지킬 수단은 갖지 못한다. 언제든 발언권을 박탈당하고 연단에서 밀려나버린다. 

작가에게 스스로 살아남기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책임 마저 요구하는 것은 웃긴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작가의 방어적 태도를 극복할 책임감 운운하려다 길을 잃은 것은 주제파악을 하느라 그런 것이다.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