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의 더러움과 두려움

가끔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의 일이다. 시간은 밤이었고 평소보다 늦게 귀가하여 일탈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버스정거장으로 가다가 건너편 음식점 앞에서 두 성인이 키스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아주 강렬했다. 그때 나는 어렸다-가 아니라 두 성인이 다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그 키스가 많이 길었던가? 음식점 아줌마가 바가지로 그 둘에게 물을 뿌려버렸을때 그들이 계속 부둥켜 안고 있었던가? 아줌마가 그들에게 꺼지라 했던가?
친구들 중 그 장면을 본 것이 나뿐이어서 나는 친구들에게 남자 둘이 키스하는데 아줌마가 물을 뿌렸다고 말했다. 친구 중 하나가 더럽다고 했다. 내가 더럽다고 하자고 얘기를 꺼냈던가? 그냥 그랬다는 것이었던가? 더럽다고 하니까 얼떨떨해서 더러운 건가보다 생각했나? 아니면 동조했나?
아줌마가 물을 뿌린 게 가게 앞에서 키스를 해서인지, 가게 앞에서 키스를 한 것이 두 남성이여서인지 잘 인지되지 않는 판에 뭐가 더럽다는 건지도 덩달아 인지가 안 되어 이따금 나는 이 일을 곱씹었다.

가게 앞에서의 두 남성의 키스는 어떤 면이 더러운가.

더러움.
바닥에 토악질을 해놓은 것을 보면 더럽다고 한다.
그 것을 순화하면 빈대떡을 부쳤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빈대떡은 더럽지 않다.
바닥에 빈대떡을 두면 구토자국으로 보여서 더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
빈대떡을 바닥에 두면 더러워진다.
빈대떡을 먹고 토악질을 한 것이라면 더 더러운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어느 순간 더러워 진 것인가.
빈대떡을 부칠 때, 조금 식었을 때, 입에 넣고 씹을 때,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 소화액과 섞일 때, 영양소와 찌꺼기로 분리될 때, 배출될 때.
그 어느 순간에도 빈대떡은 더럽지 않다.
다만, 빈대떡이 그 과정에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게 되면 더러운 취급을 받게 된다. 접시에 있어야하는데 마루바닥에 있거나, 위장에 있어야하는데 길바닥에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더러움은 일종의 제 위치에 있지 않음으로 받는 취급이다.

즉 두 남성의 키스는 공공장소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더러운 취급을 받은 것이다. 사적공간에서 키스를 하는데 순간이동을 시켜 더러워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것뿐인가?
두 남성은 부적절한 장소에서 키스를 했기 때문에 물을 맞고 꺼지란 소리를 듣고 그 장면을 목격한 청소년들의 입방아에 오른 뒤 15년 동안 잊히지 않은 것인가.
아줌마는 왜 하필 물을 뿌렸는가.

물이란 것이 몹시 의미심장하여 여러 경우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 째, 아줌마는 강렬한 더러움을 느끼곤 자신과 가게를 씻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더러움제거의 상징인 물을 뿌렸다. 덧) 소금물이었을 수도 있다.
둘 째, 물은 신의 가호를 비는 행위이다. 집안에 해를 입일지도 모를 악귀를 쫓아낼 때처럼. 오 주여, 두려움이 나를 잡아먹사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아멘.

(조악해서 지운 부분)

두려움.
빈대떡을 두려워해보자. 어떤 빈대떡이 두려울까? 빈대떡을 모르는 사람이 부쳐준 경우, 낯선 사람이 친절하게 건넨 에너지 드링크를 먹고 정신을 잃은 채 인신매매단에 팔렸다가 기적적으로 가족에게 돌아온 기구함의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면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는 빈대떡을 먹기보단 거절할 예의바른 핑계를 찾기가 쉬울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나는 모른다-에서 온다. 그 것이 주효한 것인지와는 별개로.
모른다.
나는 빈대를 잘 모른다-겪지 않았다. 나는 빈대를 소설 속에서 접했다. 소설이 내게 선지한 빈대는 궁핍하여 위생시설을 누릴 수 없는 인간이 전유하는 상상의 벌레로. 물리면 몹시 가렵다는데 그게 그러니까 아토피만큼 가려운 걸까? 빈대는 옮는다는데 서울역 노숙자들 사이에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 하는 것이다.

사실 빈대는 더럽지 않다. 빈대가 있는 인간이 더러운 거지 빈대는 더럽지 않다. 고로 더 생각해보면 이 모른다는 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모르지만 알지 않겠다는 태도. 내가 아는 데로 알겠다는 태도이다.
빈대떡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길 원하지 않는다. 빈대떡에 나쁜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면. 빈대떡에 무엇이 들었는지에 대한 자신의 들음을 안다. 빈대떡이 두렵고 무엇이 들었는지 알길 원하지 않는다.
두려움의 정체를 알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빈대떡은 아무도 잡아먹지 않기에 몹시 억울할 것이다.

두 남성은 계속 부둥켜안고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