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주제가에서 출발



동생과 포켓몬스터 주제가를 부르다가 성장기 넘치는 어린이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소모함으로 바른 교육과 사회적 성장을 시키려는 목적의 만화영화를 통해 결국 어른이 제시하는 재미가 가진 필연적인 한계인 '높은 사회 위치에의 욕망'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오프닝 곡인 '모험의 시작'. ', 이제 시작이야'로 더 많이 알려져있다. 그 중 살필 가사는 아래와 같다.
'언제나 어디서나 피카츄가 곁에 있어 약할때나 강할 때나 피카츄가 곁에 있어. 너와 나 함께라면 우린 최고야'
포켓몬스터는 자연의 특정속성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포켓몬스터가 동물처럼 존재하고 그 포켓몬과의 대결을 통해 이기면 몬스터볼에 가둘 수 있어서 그렇게 가둔 몬스터와 주종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부 설정을 살펴보는 것은 이 글에서 의미가 없고, 단순화를 해보면 이렇게 된다.
포켓 몬스터는 자연을 다룬다.
 →인간은 포켓 몬스터를 다룬다.
  인간은 포켓 몬스터를 이용해 자연을 다룬다.
고로 포켓몬스터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포켓몬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해서 재미를 주며 풀어낸 만화이다. 주인공 한지우가 여행을 통해 만나는 여러 군상을 통해 소개되는 몬스터와 주인의 관계는 인격적이기도 하고 비인격적이기도 하며, 일대일이기도 하고 일대다수이기도 하다. 포켓몬을 획득하고 사육시키는 목적 또한 애완이기도하고 투자, 투기이기도 하다. 인간과 포켓몬 둘 모두 트라우마를 가진 경우도 많아, 서로의 관계가 그것을 해소시키기도 강화시키기도 한다. 지우와 피카츄는 매 회마다 그런 많은 관계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만남이 각자에게 변화의 계기가 된다.
인간과 포멧몬의 주종관계는 앞서 말했듯이 대결을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주인공인 지우와 피카츄에겐 남다른 스토리가 있는데 지우가 피카츄를 '갖기 위해'에서 지우가 피카츄와 '함께하기 위해'로 변한 과정이 그것이다. 함께하는 것이 이상적인 동료 관계임은 여행을 통해 많은 다른 관계를 접하며 점점 확실해진다. 사실 포켓몬스터의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권리부분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생명과 자유의지를 가진 동물을 몬스터볼이라는 공간에 가두니 말이다. 지우는 피카츄를 몬스터볼에 담지 않고 함께 돌아다니는데, 그것은 개성강한 피카츄를 존중해서이지만 나중에 피카츄가 몬스터볼에 들어가는 것에 순응했음에도 여전히 지우는 피카츄를 풀어둔다. 물론 지우와 다른 사람들만 화면에 줄창 나오다가 싸울 때만 피카츄를 꺼냈다면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반 토막 났을 것이란 현실적인 이유가 있지만 차치. 차치한 김에 각설하고. 포켓몬스터는 자연과 인간 공존관계의 이상향을 제시하는 만화인 셈이다.
모양과 성격이 다양한 여러 포켓몬 중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은 피카츄는 현실세계의 설치류와 비슷한 종류로, 공격형 포켓몬 중 전기속성을 가졌다. 피카츄는 외상으로 드러날 정도의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는데, 100만 볼트라는 공격명칭은 과한 액션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기는 피카츄의 빨간 두 볼에서 시작되어 꼬리를 통해 일정한 방향을 향해 방전되는데, 주로 공격을 하지만 일상생활 충전용으로 쓰기도 한다. 전기는 인간이 다루는 에너지 중에서도 근대적인 것이다. 화력-불 포켓몬인 파이리와 수력-물 포켓몬인 꼬부기가 각각 공룡과 거북이로 고대의 느낌이라면 피카츄는 유일하게 털 달린 포유류로써 좀 더 근대적인 생명인 것은 참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더 친근하고, 친근함은 더 근대적이란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야생. 주인이 없는 포켓몬은 야생-즉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으로 배척받는다.
전기가 필요한 마을에서 피카츄와 지우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 에피소드가 있던 것이 기억나는데, 에너지를 다루는 인간은 이와 같이 높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자. 따라서 전기속성 포켓몬이고 인간과 친근한 이미지의 피카츄는 자신의 주인인 지우와 함께일 때, 그리고 심성 고운 어린이인 지우는 에너지를 가진 포켓몬을 소유함으로써 서로가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까 살핀 이 가사
'언제나 어디서나 피카츄가 곁에 있어 약할 때나 강할 때나 피카츄가 곁에 있어. 너와 나 함께라면 우린 최고야'
는 어른이 제시하는 세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열망은 에너지(자본)를 소유함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이다. 만화를 통해 어린이들은 자기의 힘을 강화하고 싶다는 성장욕구를 포켓몬을 소유하는 것으로 가능케 하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 따라서 만화의 스토리가 지우와 피카츄의 인격적인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바른 성장을 돕고 싶다는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먼저는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이고,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못하거나를 딛고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장을 벌리게 된다.
이쯤 되고나니, 이것은 포켓몬스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란 걸 알 수가 있다. 애니메이션이란 매체가 자본을 향해 기획되어 있으며 그 말은 즉 만화는 이미 투입보다 큰 시장성이 포함되어있다는 것. 어린이를 소비시장의 중요 요인으로 보고 활발하게 움직인 것이란 말이다. 파워레인져의 로보트, 우리는 챔피언의 미니카, 세일러문의 변신 봉, 유희왕의 카드, 드래곤 볼의 탈색약^^. (통키의 피구공이나, 슛돌이의 축구공이 친근해지는 순간이다.) 아동 컨텐츠의 풍성함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시장의 짭짤함과 함께 간다.
많은 애니메니션은 오프닝곡과 앤딩곡이 다르다. 포켓몬스터의 앤딩곡 우리는 모두 친구Imagine만큼 이상적이니 음악을 들으며 다시 만화는 동심을 위한 것이라는 낭만주의적 생각으로 마무리 지을까.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플 야도란 피죤투 또가스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

해맑음 속에서 맥이 빠지는 이유는 늘 비슷한 것 같다. 이상을 크게 울려퍼지게 하는 것이 커다란 스피커라는 것.
관련 링크
오프닝 '모험의 시작' 듣기
엔딩 '우리는 모두 친구'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