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3월호 시스토 로드리게즈

월간이리13년 3월호 시스토 로드리게즈,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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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기 전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예술가 12명을 쓰고그리면 제 예술관이 복음전파급으로 드러나버릴 거란 반 우스개 말을 했었는데 이번 글에 제가 지향하는 바가 가장 드러난 것 같습니다. 할 말 다한것 같은데 앞으로 9명 어쩌지...
글 전부를 올립니다, 위의 링크로 보시면 다른 글들도 보실 수 있습니다.




시스토 로드리게즈 (Sixto Rodriguez)
 
작년 11월에 홍대 상상마당에서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다큐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글 전개 차원에서 그 내용을 살짝 읊으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다큐멘터리 후기처럼 된 이번 글입니다.
서칭 포 슈가맨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50만장이 팔린 앨범을 낸 유명 가수 로드리게즈를 찾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렇게 유명한 가수를 어떻게 찾으면 다큐감이냐 싶겠지만 로드리게즈는 유명한 무명인이었습니다. 앨범이 나온 당시인 1970년대의 남아공은 정치적으로 몹시 보수적인 상태로 정부에서 문화를 통제하던 시기였습니다. 로드리게즈의 음악은 가사의 자유로움으로 인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으나 외려 저항음악으로 더욱 더 알려지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다큐의 표현대로라면 남아공에선 전축이 있는 집이라면 대부분이 로드리게즈의 앨범을 가졌으며 그 인기는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서 유명무명 했다시피 로드리게즈가 현재에 어떻게 지내는지는 물론 당시에도 어떤 인물이었는지 남아공의 아무도 몰랐습니다. 로드리게즈는 앨범만 남긴 가수였기 때문인데요. 앨범으로 돈을 벌었을 음반사의 행방자체가 묘연하고 팬들 사이에 그나마 있는 루머는 모두 로드리게즈가 진즉에 죽었다는 얘기로 연달은 공연 실패로 인해 자살’, ‘공연 중 관객에게 인사를 고하고 자살’, ‘약물 과복용으로 자살등등이 있었습니다. 로드리게즈의 빅팬이었던 시거맨은 그토록 인기 있던 가수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사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음에 놀라워하며 그를 찾기 시작했는데 로드리게즈의 노래 가사에 적힌 지역명을 힌트로 남아공이 아닌 미국, 디트로이드를 추적해냅니다. 그래서 밝혀진 사실은 음반이 처음에 미국에서 발매되었다는 겁니다
미국의 음반 제작자는 디트로이드의 허름한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한 남성의 음악이 참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는데 그가 바로 로드리게즈였으며 담배연기 자욱한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사는 곳은 어디인지 어떤 일을 하며 먹고사는지 모두 알 수 없었고 다만 정처 없는 일용직 노동자 정도로 살았으나 그는 진짜 예술가였다는 평을 합니다. 음반을 냈으나 성공하지 못한 채 거의 무명과 마찬가지로 끝을 냈는데, 그들은 로드리게즈의 실패에 아직도 납득하지 못한 채로 멕시코 출신임이 너무 분명한 그의 이름 때문에 미국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게 아닐까 말합니다만 여하튼 음반이 실패하고 계약도 마친 뒤 로드리게즈는 음악가로 다시 활동하지 않았고, 그 후 그가 어찌 되었는지 또한 미궁인 채였습니다
시거맨은 로드리게즈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웹사이트를 열어둔 상태였는데 그로 인해 한 여성의 연락을 받게됩니다. 그녀로부터 자기 아버지가 당신들이 찾는 로드리게즈인 것 같다면서 자기 아버지는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죠.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시거맨은 로드리게즈가 미국 디트로이드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고 네 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로 살고 있다는 것과 남아공에서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긴 시간의 노력 끝에 로드리게즈를 발견한 시거맨과 다른 사람들은 열광하며 남아공으로 그를 초대하고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남아공에 도착한 로드리게즈의 딸들은 그때까지도 아버지의 음악적 성공에 대해 확신할 수 없던 나머지 자기들끼리의 대화로 공연장에 20명만 있으면 다행이겠다고 했다 합니다. 그러나 축구장만한 공연장에 심지어 가득 차기까지 한 관중은 로드리게즈가 무대에 등장하자 열광을 멈추지 않아 10분간 곡은 시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로드리게즈와 무대에 선 밴드멤버들은 그가 너무 많은 관객 때문에 주눅이 들면 어떡할까 걱정했지만 음악이 시작되자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고, 로드리게즈는 완전히 준비되어있었으며 무대에 선 그는 완벽히 그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이 너무 멋졌습니다. 그 자신으로 완전히 준비되어있음이 말이죠. 그가 갈고 닦여있음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던 것이고 외부의 요인은 기회가 오느냐 마느냐인 것인데, 그가 갈고 닦여있지 않았다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겠죠
로드리게즈는 정말 그야말로 군자입니다. 공자 말하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다른 이가 알아주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음(혹은 역성내지 않음)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했으니 말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그렇듯 저 또한 이 구절이 좋아 종종 떠올리게 되는데요. 능력을 가졌음을 인정받아 합당한 자리 앉아서 뜻을 펼치고 길이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은 천하통일의 영웅이 필요했던 시대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으며 사는, 자기가 평가하는 자기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외부에 성내지 않고 삶은 자기가 추구하는 바를 향한 이러한 사람을 만나면 기쁩니다. 자신의 절대값으로 산다는 것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고로 건강한 일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모두 다른 역량과 조건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남과의 비교를 통한 것이 아닌 자기다움을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진정 자기되기를 추구하는 과정에 자신을 두는 것. 너는 어떠한 뭔가가 되기보다 너 자신이 되라고 말하는, 그래서 전 너 자신을 알라가 그런 시작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관객의 열광이 멈추지 않았던 10분간, 그 순간을 그가 삶의 보상으로 여길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기뻐했음은 분명합니다. 그 열광 뒤에 그는 관객에게 ‘Thanks for Keeping me alive.’라고 말했으니까요. 음악적 삶에서 보상을. , 보상이란 말은 그간의 무명이 마치 인정을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므로 선물이라고 고치겠습니다. 음악을 통해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이의 감사함이죠.
사람들은 예술을 하는 이에게 창작을 한다는 그 신비로움으로 인해 주목을 하고 영향을 받습니다. 물론 유명세에 따라 다르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칠 영향력이라면 건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삶을 사는 예술가이기를 바랍니다.
로드리게즈를 찾는데에 가장 열성적이었던 시거맨은 로드리게즈를 찾은 뒤로 자신은 음반가게를 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함께 로드리게즈를 찾아낸 다른 사람들의 삶은 크게 바뀌었으나 정작 로드리게즈 자신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의 딸도 아버지는 콘서트 수익금을 주변에 다 나누어주고 여전히 그전처럼 살고 있다고 하고요. 그는 본디부터 자기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현림 시인의 시 '지금 필요한 것' 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 시의 일부만 발췌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며 부디 꼭 찾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완벽한 생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묵묵히
두더지처럼 깊이로 사는 당신 얘길 듣고 싶다
당신 손에서 목수의 손을 본다
나무와 톱 망치와 못을 다스리는 손
사려 깊은 손, 뭐든 일으켜 세우는 손, 그 진지함을
일용직 노동 중에서도 남들이 피하는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로드리게즈는 제게 그러한 손을 가진 목수로, 완벽한 삶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으로 산 개인입니다. 자기 자신이 되기에 힘쓰며 자기를 세우는 삶을 살고 그를 통해 타인 또한 세우는 사람인 개인을 존경을 담아 사랑 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