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하기 전에




마지막 음미-
방안에서 픽사티브(정착액)를 뿌리다가 심폐기관이 픽스될 뻔했다. 나가서 뿌리긴 했는데 그런 방법으로 그림을 잡아두기 싫다. 앞으로는 그림에 픽사티브 처리는 않을래. 그림들이 사랑스럽다. 마지막으로 음미하자. 이것들을 뒤에 두고 새 것을 하기 전에.

작년이었던가 영문학과로 전과한 친구가 어떻게 문학을 멀리할수있느냐며 나를 타박했고 나또한 조금 수줍어져선 읽겠노라고 마음먹었었다. 마음 먹었대도 바로 마음 움직이진 않으니 작년, 결국 문학은 거의 손대지 못했고. 올해에서야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찾아 읽고있다. [올랜도]와 [자기만의 방], 그리고 지금은 [어느 작가의 일기]를 읽고 있는데 (-울프의 죽음 후에 그녀의 일기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내용을 추린 것이다. 이 일기를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일기의 한구절을 소개한다.

1920년 5월 11일
나중을 위해 적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새 책을 쓰기 시작하면 그처럼 신나게 끓어오르던 창조력은
얼마 뒤에는 조용해지고, 좀 더 차분하게 일하게 된다.
의심이 생긴다. 그러다 체념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
그리고 머지않아 어떤 형태를 갖추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든다.
조금 불안하다. 이 구상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일을 시작하자마자 익숙한 풍경 속을 걷고 있는 사람처럼 된다.
이 책에서는 즐겁게 쓸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쓴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 울프의 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