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10월호는 데이비드 호크니 입니다.


현재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 그림이 와있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이번 달의 뒷표지입니다.
별로 안 닮게 그려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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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우리는 태양빛을 소화하지 못합니다. 비타민 D를 만들어내긴 하지만요. 햇빛을 받아서 단백질을 합성해 내거나 하진 않죠. 식물은 다릅니다. 태양빛을 받아 그들 방식의 소화를 해냅니다. 그리고 우린 그 식물을 먹거나 또 그 식물을 먹은 동물을 먹어 소화할 수 있습니다. 먹이 사슬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요. 남이 소화한 것을 먹는 것에 대해 말해보자는 건데요. 때로 남의 그림을 보는 것으로 실제를 더 잘 보게 되는 때에 대한 겁니다. 남의 그림을 보는 것으로, 그가 소화해낸 것을 통해 실제를 더 잘 받아들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그린 걸까, 무얼 그린 걸까. 왜 그린 걸까? 하며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지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려보기도 하구요. 그런 과정에서 표면적으로는 형태를 표현하는 법, 기법에 대한 이해가 높아집니다. 기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작가에게 온전히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표현이란 것이 사실은 재료와 그 기법의 한계에 의한 것일 수도 있음과, 그 한계에 대한 적응 내지 극복의 과정을 깨닫기도 합니다.
본 것을 평면으로 옮김에 있어서의 많은 우여곡절은 그림 그리는 이들에게 지금도 계속 되는 것입니다만, 사진이 넘쳐나고, 인쇄가 손쉽고, 직접 투사가 가능하며, 컴퓨터상에서의 이미지 복제와 수정이 간편해진 지금은 우리는 다른 것을 걱정해야합니다.

‘이미지들은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현실의 정직한 묘사일까,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미치지 못할 만큼 생생하고 사실적이라고 여겨왔던 사진이 실은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세계를 선명하게 바라보는 우리의 능력을 감퇴시킨 것은 아닐까?’
데이비드 호크니 저 ‘명화의 비밀’ 196p

많은 시각예술가들이 그렇지만 데이비드 호크니를 이야기 할 때엔 특히나 더욱 바라보는 방식, 그려진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작업요소로 삼는 작가임을 말해야합니다. 호크니는 1999년부터 서양미술사에 있어 광학기술이 그림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여 2001년 자신의 저서 ‘명화의 비밀 Secret Knowledge : Rediscob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에서 밝혔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것으로 앵그르,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등의 대가들이. 그리고 많은 다른 화가들이 15세기 초부터 광학을 이용하여 그들의 그림에서 인물과 사물의 형태와 양감, 색채의 표현의 정확성을 높였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무엇을 그렸느냐, 그들이 본 것을 그렸다. 그러면 그 어떻게 보았는지, 보는 방법에 대해 묻게 되죠. 신고전주의의 대가 앵그르가 그린 인물 드로잉이 무척 작은데도 완벽하리만치 정교한 것을 본 호크니는 어떻게 이렇게 그렸을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는 결국 많은 화가들이 거울과 렌즈, 강한 조명과 암막을 이용하여 대상을 평면에 투영했고 그것을 손으로 복사했다는 것을 밝힙니다.
사진기술이 없던 시절 실제 같은 그림을 그토록 놀랍게 그려낸 화가들에 대한 경이로 꽉 차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광학을 이용했다는 것에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꼼수를 부렸으니까요. 그렇다더라도 광학기술을 도입하여 그린 화가들의 그림이라고 평준화를 이루지는 않습니다, 그림은 여전히 본 바를 손으로 그리는 것이라 잘 보고 잘 그리는 화가만이 뛰어난 화면을 만들어냈습니다.
광학기술에 의존해 가능했던 실제 같은 그림은 그 기법에 의한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메라의 눈은 하나, 인간의 눈은 둘’입니다.
호크니의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그림은 그의 1960년대와 1970년 초반대의 것으로 주로 로스엔젤레스의 수영장의 풍경과 인물을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크니와의 대화를 기록한 마틴 게이퍼드의 저술 ‘다시, 그림이다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 by Martin Gayford’에 의하면 호크니 역시 자신의 당시 그림들을 좋아하지만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방식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것은 카메라 렌즈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사진이 궁극적으로는 실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기하학적으로 대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기하학적으로 보지만 또한 심리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내가 저 벽에 걸린 요하네스 브람스의 사진을 본다면, 그 순간 브람스는 문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일 겁니다. (중략)’
마틴 게이퍼드 저 ‘다시, 그림이다’에서 호크니의 발언 중 53p

호크니는 보는 방식을 연구하며 새롭게 그리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에 기반하여 작업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의 실험으론 야외에서 그린 대규모 풍경작업을 들 수 있으며, 현재 한국에 그 작품이 와있는 상태인데요.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Bigger Trees Near Warter’가 전시중입니다. 그림은 12.19m × 4.57m 사이즈의 대작으로, 대략 50호 크기의 캔버스 50점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과천 미술관의 넓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워낙 큰지라 양팔을 벌린 디귿자 형태로 설치되었습니다. 전시장에는 그림과 함께 A Bigger Picutre라는 60분짜리 영상을 볼 수 있어 영상을 통해 지금 전시중인 그 거대한 회화작품이 영국의 테이트 모던에 기증되었으며, 야외에서 제작된 가장 큰 그림으로 꼽을 수 있다는 것과, 호크니의 작업 방식, 작업에 대한 생각, 생활과 같은 것 볼 수 있습니다. 호크니가 그 작업을 위해 그린 다양한 드로잉을 함께 볼 수 있었더라면 무척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아 아쉬움이 큽니다만, 뛰어난 그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소화시키고 더 잘-새롭게 보게 되는 면에서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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