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뒷 표지 담당의 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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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랄까.  월간이리 뒷 표지를 예술가 얼굴 드로잉으로 채우게 되었습니다. 월간이리는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매달 발행하는 무가지인데요. 여차저차 연결되서 하게 되었어요. 2013년 1월부터 한 해간 마지막 두 면엔 제가 뽑은 예술가에 대한 글, 그리고 뒷표지엔 그의 얼굴 드로잉이 실립니다.  제 그림을 오프라인으론 처음 내보이는 것이라 좀 설레요. 글도 그렇고요.
예술가의 얼굴을 드로잉하는 것은'그리고 싶어요재밌을 것 같습니다.' 하고 쉽게 정한 것에 비해 아주 어려웠습니다드로잉이야 좋아하는 예술가를 그리면 된다 싶기도 한데, ‘자기가 좋아하는 예술가 그린거래.’에서 끝나는 그림이 아니라 이 예술가를 왜 그렸는지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사람들은 어떤 개연성으로 이어지는지의 것들을 적고자 하니 그거 어렵대요. 그리고 싶은 얼굴을 그릴 땐 동인이 저에게 있으니 그림도 술술 그려지고 논리를 세울 필요도 없는데 미션 [예술가를 그려라.]는 그에 비해 좀 복잡한 겁니다일단 외부에서 들어온 명령어라 저의 내부에는 그것이 나올 틀이 없기에 새로 짜지 않으면 글까지 한 세트인 결과물을 뽑아낼 수 없었습니다1년 예정이니 제가 생각하는 예술가를 12명이나 그릴 텐데 12명은 12사도열두 사도면 복음전파즉 이것은 제 예술관까지 전파 되버리는 무시무시한 작업인거 아닙니까? 그런데 예술관이 바로서지 않았다면 어쩌죠? ^^ 여태껏 살면서 본 것들접한 것들을 '좋다나쁘다느낌 없다.' 하며 항상 분류해왔으니 취향은 분명한데 관으로 세울만큼 그것들을 명확한 언어로 정리해본적은 없어요일단 시작이 절반으로 인도해주기를 기대하며 좋아했던 작가를 다 꼽아 놓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지만 사실 그게 그거에요. 닭과 알. 뭐가 먼저인지는 문제가 아니에요. 진리는 알이 있다면 닭은 분명히 있는 거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현현한 순서의 전후관계가 바뀔 때 서로가 부정된다면 그때만이 순서를 두고 진리를 논할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 생각을 요번 경우에 적용하자면 예술가를 먼저 정해놓고 글을 쓰기 시작해도 사실 제 안에선 동시에 존재한 것이기에 자연스레 논리와 맥락이 설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무에서 유를 내는 창조로 썰을 푸는 것도 가능한 경우가 있지만 적어도 제게는 아니라서 만약 그렇다면 글 자체가 진행이 되지 않을겁니다. 그래서. 제가 술술, 어떤땐 쥐어짜가며라도 글을 바르게 썼다면 그와 함께하는 그림도 결코 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완벽한 콘텐츠*가 된 셈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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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content)는 각종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이다저작물창작물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쥐어짜네 어쩌네 해도 즐겁습니다. 위에도 적었다시피 글과 그림을 세트로 처음 내보이는 거에요. 그림은 뭐 그렇지만. 글도 읽어줄만 할지..?

(월간이리는 굉장하게도 인터넷을 통해서도 볼 수 있어요. 1월호가 나오면 (2)번 글을 올리면서 링크를 걸어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