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입니다.

집에 들어가는 문을 열면 쾌쾌한 습한 냄새가 찡합니다. 실제의 우리집에 도착하기엔 두 개의 문이 더 있는데, 하나는 늘상 열려 있다가 가끔 주변의 불길한 소식에 잠기는 문, 또하나는  집의 사각형을 지켜주는 문으로 역시 늘상 열려있는 문입니다. 어쨌든 두 문을 더 지나서 집에 도달하면 사실 아까만치 쾌쾌하지 않습니다. 쾌적해진달까?
오늘은 얻어마신 맥주가 꽉 차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향합니다. 화장실로 가기 위해 사각형의 다른 쪽 문을 열고, 슬리퍼를 발끝에 걸고 부랴부랴 뛰었죠.
사실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저는 쾌쾌한 냄새를 맡음과 동시에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이런 상황을 적을 자격이 내게 있는양 생각했습니다.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때 내게 거기에 대한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서 말을 하고 있다면 나는 이미 하나의 기단 위에 서있습니다. 남들은 기단 아래의 평소에 서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곳은 보다 양지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제가 서있는 저의 기단, 그것은 적당한 궁상으로 정말의 궁상은 정말로 고난인데, 제게 있는 적당한 궁상은 그것으로 시비를 가리거나, 푸념거리거나. 여유시간을 소일할 건덕지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진정으로 극복할 실제의 무엇을 가지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억거리며 퉁기고. 퉁긴것에 자빠지고, 자빠진 것을 끌어안고 왜인지 글썽글썽 울기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적당한 궁상의 끝에 그림을 그린 뒤에, 모든 것이 그림을 그리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하면. 와, 진정성이 획득되고 있습니까?

언제까지 어린 심성이 솔직함을 무기로 든 채 자기의 삶에 삐져있을까요.



다른 것을 기대하고 방문하신 분들께 이것마저 봐달라고 말씀드립니다. 그 반응이 무엇이든 제게 그 이후를 보여주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