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경계

나를 지각할 때 그 ‘나’가 내 중심부에서 있으면 제법 풍부하다.
나를 지각할 때 나의 경계에 있으면 늘 받하다.
나의 외곽에 아슬아슬하게 선 나는 때로는 가족에게 나는 여기까지고 당신들은 거기부터라고 말한다. 친구들에게 여기까지는 우리지만 이 다음부터는 나라고 말한다.
지하철에서 몸을 부대껴오는 낯선 사람에게서 물러나면서 내 영역의 경계를 세우듯이, 얼굴 익은 이의 반갑지 않은 인삿말이 내 하루에 개입하는 것에 경계를 세우고, 내 작업물에 대한 타인의 판단에 경계를 세우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때에 내미는 손을 거절하고 배부를때에 한 입 더 주는 것을 거절하고 춥지 않을 때에 한자락 덮어주는 것을 거절한다.
아니 설사 스스로 못 일어나겠을 때에도 거절하고 배고플때도 추울때도 거절하는 것은 내가 경계에 있을때. 여기까지가 나인 것이 너무 쓰라릴때. 잠시 스치는 ‘나 외’가 너무 힘겹다.
네 개입을 받아들이다간 내 형체가 유지되지 않을 것 같은 때. 내게서 떠나가고 나를 흐리지 말라고 경계에 받혀 말할 때.
여기는 내 핵이 비춰보이는 막. 한 궤도만큼 물러나줄래?하는- 그런 말을 어떻게 친절하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