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부술 모래성이래도

내가 쌓은 것을 네가 부수면 곤란하지.
또 초등학생때의 이야기이다. 몇 학년 땐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태권도를 배울 때였는데 당시 행사가 있었나 해서 태권도장이 풍선으로 장식되어있었다. 사부는 그 벽에 붙은 풍선을 떼어 한참 가지고 놀라고 두더니 잠시후에 이제는 모두 터뜨리라고 했다. 몸을 다루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아이들을 노동력으로 환원시키는 지혜였다. 문제는 잠시 가지고 놀던 풍선을 ‘나의 풍선’으로 인식해버린 내가 풍선을 지키고 싶어졌다는데 있다. 모든 풍선이 제거되고나자 한 아이가 마지막 남은 내 품의 풍선을 보고 터뜨리겠다며 달려들었다. 그때 품안의 풍선은 그야말로 내가 온 힘을 다해 지켜야할 나의 것이 되어버렸고 실랑이끝에 그 아이를 무도로 제압해 풍선을 지켰다. 원숭이 같은 새끼. 잘도 우는 구나?
그 꼴을 지켜보던 사부가 내게 별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 나는 풍선을 터뜨렸다. 부여한 의미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제 그건 공기가 들어간 고무떼기에 지나지 않아.
큰 지진이나 태풍의 전조를 동물은 감지한다고 하지. 동물들이 이동할 철이 아닌데 떼지어 이동하거나 하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경계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한 섬에 살던 쥐떼가 해일을 피해 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목숨을 부지했음에도 해일이 빠져나간뒤 일제히 바다로 빠져 익사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쥐에게는 목숨이 그랬을까? 내게 속한 것으로 필사적으로 지키고 난 뒤, 불현듯 하찮아 내던져 버렸던 걸까?

+방금 쥐떼가 자기가 있는 땅에 식량이 부족해졌기에 바다너머로 이동하다 죽는 것이라는 설을 읽었다. 심지어 레밍 또는 나그네쥐라는 특정종으로 시력이 무척 나쁘다고 한다. 얼마나 삶같은지 정말 실망스럽고 재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