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맛 사탕 말하기

물론 지금도 내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기 꽤나 좋아하지만 또래들과 교실에 모여있었을때만 할까? 선생의 칭찬이 내 존재의 뿌듯함이 되었던 때만큼 말이다.
안에 색을 넣은 유리구슬을 보면 가끔 자두맛 사탕이 생각난다. 반투명한 사탕알에 진분홍의 테를 둘렀던, 어린 입에는 조금 크다 싶던 자두맛 사탕은 항상 교탁 아래 있었으나 감히 손대보지 않았던 선생의 칭찬 이후에 따라오는 작은 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교사는 마른 얼굴에 가르마를 크게 탄 아마 40중반 쯤이었을 양반으로 발표를 잘 한다거나 행동을 바르게 하면 상으로 교탁 아래 자두맛 사탕을 한 알씩 꺼내어 주곤 했다. 당시 우리는 매 수업마다 열정적이어서 너도 나도 읽기를 자처했고, 읽던 아이가 한 자만 틀려도 벌떡 일어나 다음 순서를 읽겠노라 다투었을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자주 지목되는 아이가 꼭 있지 않아? 생각해보면 이제사 참 빤히 보이게도 부모가 학교에 자주보이는 아이들로 거기에 똘똘하기 까지하면 교탁속 사탕은 늘 걔 차지였던 것.
꽤 똘똘한 축에 꼇음에도 나는 자두맛 사탕을 한번도 받지 못했는데 그것이 아무리 맨앞줄에서 제일 먼저 손을 들어도 도무지 선생이 나를 지목해주지 않는 것이며, 어쩌다 내게 기회를 주어도 사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이유에서였다.
그 이유의 이유는 너무 쉬웠다. 촌지도 없고 급식당번 한 번 안오는 부모님. 담임은 나와 우리 부모님을 미워했던 거다. 뭐 여러 이유로 여러 다른 선생의 미움을 샀음을 기억하지만 그때만해도 누가 나를 싫어한다라는 개념이 상당히 약했던 터라 미워해도 미움받는 줄 모르고 그저 사탕이 야속했더랬는데. 그저 나도 쟤만큼 똑똑한데 인정해주지 않는 선생덕에 수업마다 관심못받는 변두리에 처박혀서 투쟁하듯 손을 들었던가? 어쨌든 너무 옛날 일이다.
그치만 새삼 꺼내어 웃기는 게 아니, 촌지받아 사탕 사는 것 아니면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야? 그것이 어떻게 미움으로 이어지는지 그것이 얼마나 궁색한 미움인지 우스움이 난단 말이지.
방학을 앞두고 청소한 교탁 아래서 여름 땡볕에 다 녹아버린 사탕을 찾은 내가 그것을 꺼내 먹으며 볼이 시렸는지. 아니면 사탕이 싫은 데도 받아 먹어야했던 내 똘똘한 단짝의 질린 표정과 함께 마음에서 쩐득쩐득 떠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88올림픽 수영장에서 킥판 하나씩 끼고 친구들과 물에 둥둥 떠있던 체험학습의 어느날 불현듯 영은이가 말했다. 저기 영만이 있다.
영만이. 우리 담임.
지금은 정년퇴임했을 영만아. 네가 그때 사탕으로 골리던 아이들이 벌써 서른이 되었단다. 부디 세월이 네게 부끄러움을 알려주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