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얼굴 7점






자는 얼굴의 신생아같은 것이 맘이 편한 건 왤까요
스캔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중간톤이 다 날아갔네요

자릿세로 지불한 커피

‪2층의 창가로 자리를 정하곤 굳이 홀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주말의 서울을 붐비는 곳곳 골라 헤맨 뒤 사람들 모인 것 보기싫어 한숨이 나오는 판에 이제사 앉은 카페에서조차 앉은 각각을 눈에 들이는 이유는 글쎄 오후 네시의 밝음이 조금 부담돼서.
밝음이 눈에 버거울때 해를 등져보는 거예요. 해한테 말에요 내가 삐졌노라 몸을 돌려버리면, 살살 달래주는 해탓에 등이 따듯해지며 오장 육부가 슬그머니 자리를 찾아가죠.
네, 슬그머니요. 내가 맘이 이렇게 상했는데 말에요. 한 번에 풀릴 수야 있겠어요?
자릿세로 지불한 커피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만큼 나는 맘이 상했단 말예요. 목이 단단하게 굳었고 어깨자리는 욱신대는데 맘이나 추스를 셈으로 글 따위를 적고 있는 참이라구요.
작은 화가 몸을 불려 큰 서운함으로 맘을 차지하고 나면 그에 밀려 저 구석에 박힌 나는 이내 설움이 돼버리는 응어리따위. 이것 차라리 쉬운 것.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글줄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를 적거나 하며 시간을 꾹꾹 채워보냈다. 기다림에 지쳐 조바심이 나고 이내 짜증으로 가득 차 정작 그 누구를 만났을 때 반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기다림이란 단어를 잊은, 내 시간을 채우는 나의 능동이 자랑스러웠다.
기다림을 잊는 것이 그리움을 잊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너를 반가워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너를 기다리는 시간, 네가 올 때까지라는 한시적 시간을 이일 저일 하며 채우는 와중 문득문득 너를 그리워 하는 일로 내게 너의 공백이 차오른다.
기다릴 새 없이 같이 있던 우리가 서로의 공백을 잊었을때.
너도 물러나줬으면 하는 맘으로 마지못해 물러났을때. 나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딱딱한 벽이 되어 등을 보였다. 마지못한 사과를 전시한 채.
네가 읽을수도 있지의 가능성이 동기가 되어 글을 시작했지.
너인지 몰랐던 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가능성에 밤거리를 헤맸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내 맘이 향할 방향이 되어준 그래서 몸이 가야할 곳에 헤맴 없이 향하게 한.
시시마다 너여서 넘어왔던 언덕들을 잊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둔턱에 걸려 넘어지는 이 충돌은 사소하지 않니, 우리가 이인삼각 중이라면.
잠시 너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요. 나는 등에 해를 받는 따듯하고 푹신한 구름으로 부풀어.
너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간을 채운다. 주머니 속 종이봉투에 군불에 구워진 단내 나는 밤 세 알. 네 알은 내가 먹었지롱.

자두맛 사탕 말하기

물론 지금도 내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기 꽤나 좋아하지만 또래들과 교실에 모여있었을때만 할까? 선생의 칭찬이 내 존재의 뿌듯함이 되었던 때만큼 말이다.
안에 색을 넣은 유리구슬을 보면 가끔 자두맛 사탕이 생각난다. 반투명한 사탕알에 진분홍의 테를 둘렀던, 어린 입에는 조금 크다 싶던 자두맛 사탕은 항상 교탁 아래 있었으나 감히 손대보지 않았던 선생의 칭찬 이후에 따라오는 작은 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교사는 마른 얼굴에 가르마를 크게 탄 아마 40중반 쯤이었을 양반으로 발표를 잘 한다거나 행동을 바르게 하면 상으로 교탁 아래 자두맛 사탕을 한 알씩 꺼내어 주곤 했다. 당시 우리는 매 수업마다 열정적이어서 너도 나도 읽기를 자처했고, 읽던 아이가 한 자만 틀려도 벌떡 일어나 다음 순서를 읽겠노라 다투었을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자주 지목되는 아이가 꼭 있지 않아? 생각해보면 이제사 참 빤히 보이게도 부모가 학교에 자주보이는 아이들로 거기에 똘똘하기 까지하면 교탁속 사탕은 늘 걔 차지였던 것.
꽤 똘똘한 축에 꼇음에도 나는 자두맛 사탕을 한번도 받지 못했는데 그것이 아무리 맨앞줄에서 제일 먼저 손을 들어도 도무지 선생이 나를 지목해주지 않는 것이며, 어쩌다 내게 기회를 주어도 사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이유에서였다.
그 이유의 이유는 너무 쉬웠다. 촌지도 없고 급식당번 한 번 안오는 부모님. 담임은 나와 우리 부모님을 미워했던 거다. 뭐 여러 이유로 여러 다른 선생의 미움을 샀음을 기억하지만 그때만해도 누가 나를 싫어한다라는 개념이 상당히 약했던 터라 미워해도 미움받는 줄 모르고 그저 사탕이 야속했더랬는데. 그저 나도 쟤만큼 똑똑한데 인정해주지 않는 선생덕에 수업마다 관심못받는 변두리에 처박혀서 투쟁하듯 손을 들었던가? 어쨌든 너무 옛날 일이다.
그치만 새삼 꺼내어 웃기는 게 아니, 촌지받아 사탕 사는 것 아니면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야? 그것이 어떻게 미움으로 이어지는지 그것이 얼마나 궁색한 미움인지 우스움이 난단 말이지.
방학을 앞두고 청소한 교탁 아래서 여름 땡볕에 다 녹아버린 사탕을 찾은 내가 그것을 꺼내 먹으며 볼이 시렸는지. 아니면 사탕이 싫은 데도 받아 먹어야했던 내 똘똘한 단짝의 질린 표정과 함께 마음에서 쩐득쩐득 떠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88올림픽 수영장에서 킥판 하나씩 끼고 친구들과 물에 둥둥 떠있던 체험학습의 어느날 불현듯 영은이가 말했다. 저기 영만이 있다.
영만이. 우리 담임.
지금은 정년퇴임했을 영만아. 네가 그때 사탕으로 골리던 아이들이 벌써 서른이 되었단다. 부디 세월이 네게 부끄러움을 알려주었길.

세포경계

나를 지각할 때 그 ‘나’가 내 중심부에서 있으면 제법 풍부하다.
나를 지각할 때 나의 경계에 있으면 늘 받하다.
나의 외곽에 아슬아슬하게 선 나는 때로는 가족에게 나는 여기까지고 당신들은 거기부터라고 말한다. 친구들에게 여기까지는 우리지만 이 다음부터는 나라고 말한다.
지하철에서 몸을 부대껴오는 낯선 사람에게서 물러나면서 내 영역의 경계를 세우듯이, 얼굴 익은 이의 반갑지 않은 인삿말이 내 하루에 개입하는 것에 경계를 세우고, 내 작업물에 대한 타인의 판단에 경계를 세우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때에 내미는 손을 거절하고 배부를때에 한 입 더 주는 것을 거절하고 춥지 않을 때에 한자락 덮어주는 것을 거절한다.
아니 설사 스스로 못 일어나겠을 때에도 거절하고 배고플때도 추울때도 거절하는 것은 내가 경계에 있을때. 여기까지가 나인 것이 너무 쓰라릴때. 잠시 스치는 ‘나 외’가 너무 힘겹다.
네 개입을 받아들이다간 내 형체가 유지되지 않을 것 같은 때. 내게서 떠나가고 나를 흐리지 말라고 경계에 받혀 말할 때.
여기는 내 핵이 비춰보이는 막. 한 궤도만큼 물러나줄래?하는- 그런 말을 어떻게 친절하게 해.

어차피 부술 모래성이래도

내가 쌓은 것을 네가 부수면 곤란하지.
또 초등학생때의 이야기이다. 몇 학년 땐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태권도를 배울 때였는데 당시 행사가 있었나 해서 태권도장이 풍선으로 장식되어있었다. 사부는 그 벽에 붙은 풍선을 떼어 한참 가지고 놀라고 두더니 잠시후에 이제는 모두 터뜨리라고 했다. 몸을 다루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아이들을 노동력으로 환원시키는 지혜였다. 문제는 잠시 가지고 놀던 풍선을 ‘나의 풍선’으로 인식해버린 내가 풍선을 지키고 싶어졌다는데 있다. 모든 풍선이 제거되고나자 한 아이가 마지막 남은 내 품의 풍선을 보고 터뜨리겠다며 달려들었다. 그때 품안의 풍선은 그야말로 내가 온 힘을 다해 지켜야할 나의 것이 되어버렸고 실랑이끝에 그 아이를 무도로 제압해 풍선을 지켰다. 원숭이 같은 새끼. 잘도 우는 구나?
그 꼴을 지켜보던 사부가 내게 별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 나는 풍선을 터뜨렸다. 부여한 의미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제 그건 공기가 들어간 고무떼기에 지나지 않아.
큰 지진이나 태풍의 전조를 동물은 감지한다고 하지. 동물들이 이동할 철이 아닌데 떼지어 이동하거나 하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경계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한 섬에 살던 쥐떼가 해일을 피해 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목숨을 부지했음에도 해일이 빠져나간뒤 일제히 바다로 빠져 익사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쥐에게는 목숨이 그랬을까? 내게 속한 것으로 필사적으로 지키고 난 뒤, 불현듯 하찮아 내던져 버렸던 걸까?

+방금 쥐떼가 자기가 있는 땅에 식량이 부족해졌기에 바다너머로 이동하다 죽는 것이라는 설을 읽었다. 심지어 레밍 또는 나그네쥐라는 특정종으로 시력이 무척 나쁘다고 한다. 얼마나 삶같은지 정말 실망스럽고 재미가 없다.